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UNO,
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, 네게는 그저 조금 더 수려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.
어쩌면 시간을 들여 준비한 묵은 해명이 네게 더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는 일이다.
제아무리 공들인들 이 편지의 내용이 구차한 합리화라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희석되는 것은 아닐 테고,
내가 하려는 말은 이제 와서 하기에는 너무 늦은 까닭에 아마 네게 닿는 순간에 곧장 불타 버릴 말이다.
그러므로 나는 이 편지를 네게 건네주는 숭고한 기개 따위는 결코 품지 못하겠지만,
네 눈을 보고 너를 탐했던 순간, 그 나약한 발을 돌려 곧장 너로부터 멀어졌어야 했다.
너를 데리고 와 내 눈앞에 묶어두고 싶어졌을 때, 그 어리석은 욕망을 거두고 눈을 감았어야 했다.
매일같이 네 눈의 푸른빛을 마주하다 보면 네게 무뎌질 수 있을 거라고 주제넘게 다짐하는 게 아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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